나는 누구인가 - 도도한 생활을 읽고 :: hauntedwebsite Angelfish

저는 평소에 스스로를 해체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이나 학과, 이름, 성별, 주변인과 취미를 전부 설명한다고 해도 표현할 없는 자신은 글에서나 드러낼 있습니다. 정체는 신체와 정신 모두를 아우릅니다. 저는 거동이 불편하고, 말주변이 부족합니다. 대신 글을 읽은 친구들은 제가 진솔하게 비워낼 아는 글쓰기를 한다고 말합니다.

**에 편입하기 전에는 사이버대학교에 재학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렇다할 경험이 없어 알지 못했는데 ** 다니며 본격적으로 과제용 에세이나 발표용 스크립트를 쓰다 보니 제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다양한 사람들이 보이게 되자 자신과 타인을 비교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다운 찾는 것은 무모하고도 무용한 과정입니다. 자아는 이미 내면에 있고, 마주볼 용기만 있다면 탐색은 끝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를 탐색하기 위한 글쓰기에 잠시 막막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실 털어놓는 글쓰기라는 충분히 타인에게 폭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베이비 레인디어 제작자인 리처드 개드의 회고록이며 공개 당시 충격적인 내용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레오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2012) 감독 본인의 이전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섞고, 애인의 죽음 본인의 삶에 대한 레퍼런스를 강하게 넣으면서도 추상적인 이미저리를 사용해 당혹감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매스 미디어라 하면 차라리 관객은 시청하기를 택한 사람들이고 불특정 다수입니다. 경우와는 다르므로 어느 정도로 가공하는 좋을까 한참 고민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청춘이 환한지 창백한지 물으셨습니다. 청춘은 빛을 비춰도 착색된 부분이 도저히 밝아지지는 않는 오래된 터퍼웨어고 짙은 다크서클입니다. 그렇다고 따뜻한 음식을 담을 없거나 시력이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대도 보편적으로 말하는 청춘이라는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기에는 바쁘고 연애 고민에 일도 없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뒀던 19살의 12월과 스물이 되던 1월에는 영국으로 달간 여행을 갔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에도 들렀었습니다. 세인트 그린 공원에서 만난 노숙자 아저씨가 튤립에 대한 노래를 불러주었고 펠리컨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구경시켜주었고 까마귀에게 땅콩 먹이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정육점에 가는 길에 루브르 박물관을 지나쳤습니다. 기차표를 사는 기계를 찾지 못해 실수로 무임승차한 기차에서 벌금을 뻔하고 울었습니다. 튜브에서 신문과 초콜릿 케이크를 얼떨결에 주운 적이 있었습니다. 혼자 외딴 곳에 떨어지는 경험은 소중합니다. 엉뚱한 일이 일어나거나 예쁜 사진을 남기지 못해도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 이것도 청춘이지, 하고 말하곤 합니다. 청춘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면 낭만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자취를 지는 이제 1년하고도 정도가 지났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때문에 완전히 혼자는 아니지만 생활의 전반을 혼자 지냅니다. 서울에서 환기구 하나 없는 원룸에 살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도로에서 배기가스가 들어오고 화장실의 작은 창문은 문이 닫힌 복도로 통합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걸로 꾸며보겠다고 벽에는 영화와 게임, 좋아하는 뮤지션의 포스터를 잔뜩 붙여놓고 펀칭백까지 들였습니다. 반지하는 아니지만 비가 와서 물이 잔뜩 들어차는 상상을 했습니다. 친구가 필사해준 시와 에세이 뭉치가 위에 떠다니고, 잉크가 번져 읽지 못하게 됩니다. 큰맘먹고 12만원이나 주고 중고 베이스 기타와 앰프는 물을 먹고 고장이 납니다. 아껴 쓰는 향이 좋은 비누는 흙탕물에 온통 녹아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사라진 것도 슬픈데 침수된 오븐이나 밥솥을 새로 돈도 없습니다. 물을 퍼내고 물건을 말리고 나면 바닥에 눌어붙었을 오물을 닦아내고 빨래를 번이나 해야 할까요.

저는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좋아합니다. 피아노가 하고 운다면 바이올린은 부터 울기 시작합니다. 비브라토는 흐느낌이고 스타카토는 딸국질이죠. 활을 떼지 않고 위아래로 천천히 끌었다 당기면 길게 하고 웁니다. 초등학생 때와 중학생 배운 전부라 켜지도 못하는데 호박처럼 노란 빛이 도는 바이올린이 있습니다. 현은 줄이고 말총은 매끄럽습니다. 년간 바빠서 건드리지도 못했던 케이스를 열어보니 줄은 풀려서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그럴 알면서도 굳이 열어본 것은, 연주하고 싶은 음악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앤드류 버드의 “Pulaski at Night”이라는 곡의 멜로디였는데, 여전히 연주해보지 못했다는 점이 송진 가루처럼 끈덕지게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앤드류 버드는 시카고에서 나고 자랐는데, 풀라스키 가라는 볼품 없는 거리에 밤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의아한 마음이 남아, “I want to see Pulaski at night” 이라는 문장에서 기인한 곡을 곡이나 냈습니다. 머릿속에서 돌아보는 고향 시카고는 빛이 가득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정작 그림으로 그리거나 엽서라도 쓰려고 치면 못난 현실을 마주한다는 내용입니다. 후렴구는 “Come back to Chicago,” 하며 향수 어린 가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향 또한 이제는 유령도시입니다. 미군 기지 근처의 상권은 케밥과 타코 식당들, 나이트클럽, 그리고 성매매 업소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양키 거리에서 축제라도 하면 신이 났었는데, 불빛이 엽서에 실릴 일은 없었습니다. 고향은 지역뿐이 아니라, 향수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피아노가 만두이듯이 제게 있어 바이올린 소리는 양고기를 넣은 도네르 케밥이고 들기름에 무친 뽕잎이고 미군 MRE 들어있던 치즈 소스를 바른 크래커입니다. 하면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합창처럼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