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Think of an Elephant 독후감 :: hauntedwebsite Angelfish


조지 라코프는 인지과학을 통해 미국 정치의 모습을 새롭게 비춰줬습니다. 프레임 이론을 접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제대로 이해한 것은 처음입니다. 프레이밍이라는 용어 자체가 상당히 직관적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으로 남발될 때마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으로 아주 받아들이기 쉽도록 쉬운 용어의 사용과 친절하게 예시를 든 설명이 많은, 미국 정치에 입문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첫 에디션은 20년 전에 쓰였고, 개정판도 이제 벌써 10년이 되었는데, 참 긴 시간이면서도 사건으로 따져보았을 때 고작 20년 전이라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기마저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이 자산으로서 거래될 때 부르주아지로부터 프롤레타리아의 착취가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노동력은 가장 기본적인 재화입니다. 그런데 그 노동력에도 다른 값어치가 매겨지기에 가치가 높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돈을 주고 대학에 진학합니다. 조지 라코프는 학생들이 더 높은 학문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졸업장을 따서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는 노동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에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미국의 학비는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에게도 큰 타격을 주는 액수입니다. 한국에서도 학비는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허락받기 위해 돈을 내고 학벌주의에 수긍해야 하는 구조가 이상하다고는 늘 생각했습니다. 공교육의 붕괴는 우민화입니다. 미국의 투표 제도를 보았을 때 이것이 의도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에 극구 동의합니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면 미국에서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이민자의 나라라지만 “굴러온 돌”과도 같은 새로운 이민자들을 오래된 이민자들이 두려워하는 셈입니다. 정착할 커뮤니티가 없거나 낙후된 커뮤니티에 속해야만 하는 새로운 이민자들은 시민권을 얻더라도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음 세대가 힘을 가지도록 키워낼 능력을 갖지 못하도록 막혀있으며, 이는 인종 분리가 여전히 우세함과 직결됩니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인구가 주를 이루는 지역은 대개 열악한 환경이 고의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조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믿기로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본능이며, 자연적으로 인간 개인은 매우 약하며, 강자도 약자(어린이)로부터 시작해 약자(노인)으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돌보고 강자가 된 약자가 약자가 된 강자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데 보수 진영의 도덕은 그 반대를 주장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미국에서 특히나 동성 결혼이 빠른 속도로 받아들여진 것은 자본주의적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사업은 돈이 됩니다. 책에서도 “~often with a buildup of ~ engagement, a shower, wedding plans, rituals, invitations, a bridal gown, bridesmaids, families coming together, vows, and a honeymoon(98p)” 라고 나오듯이 결혼이라는 행위 하나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소비는 가지수도 금액도 쉽게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랑이나 자유 같은 신성시되는 개념들의 영향도 강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섹슈얼리티가 잘 팔리는 상품이 된다는 점이 기여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스몰 웨딩이나 아예 식을 올리지 않는 트렌드가 강합니다. 결혼은 의무적이거나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의 일종으로 자주 선전되곤 합니다. 보편적인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동성 결혼을 “허용”할 “필요성”을 설득하기에는 부적합한 양상입니다. 


한국어로 동성애는 누구나 하나같이 같을 동, 성 성, 사랑 애를 사용하는데, 미국 보수파들은 욕설인 homo와 성교의 이미지를 부르는 sex가 들어간 homosexual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동성애라는 단어를 한글 내에서 리프레이밍할 수 있을까요? Love wins all이라는 슬로건을 두고도 싸움은 벌어집니다. 성별이나 성별에 따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보편성을 사랑이 이긴다(overrule)는 의미의 이 문구가 한국 사회로 들어올 때는 문화적 컨텍스트를 잃어버린 채 두루뭉슬한 어감만을 지켰습니다. 그러자 사랑이 이기는 대상은 확장되었습니다.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사랑이 이긴다는 합의된 맥락이 사라지고 경제적인 배경, 단순하고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들 혹은 all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아가페적인 사랑에 반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듯 의미는 와해되고 슬로건은 글귀로 전락합니다.


더불어, 미국에서는 first amendment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이 매우 강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한국의 정서는 그와 다릅니다. 그렇다면 다른 프레이밍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았으나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질 만한 근본이 될 개념이 무엇인지 찾아내지 못해 어떤 프레임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인권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때, 인권의 수호자들은 화가 난 상태로 출발하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을 하는 보수 진영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고, 탈출은 지능순이라거나 모르면 외우라는 말만 반복하게 됩니다. 반대로 단단히 다져진 안정적인 도덕적 기반을 대뜸 공격받는 보수 진영에서도 방어를 위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여기서 evil, angry, irresponsible liberal의 이미지가 실현됩니다. 진보 진영은 너무나도 다양한 주장을 펼치며 통합하지 못하고, 기업의 자본 중시에 반하는 동시에 비싼 음료를 사 마시며 촐랑촐랑 산책이나 하고, 개인의 기분 중시가 자유이자 인권이라는 미시적 시각으로 계속 화만 내는 어리광쟁이들의 집단으로 변모합니다.


권선징악은 익숙한 메시지입니다. 간단명료한 선악의 구분은 삼키기 쉽고, 그를 넘어 매혹적이기까지 합니다. 복잡한 문제에 있어 깔끔한 답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적”을 절대악으로 상정하면 공격과 혐오는 정당한 보호가 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제거하고 그 이상의 정의감을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장치가 되어줍니다.


미국의 미디어를 보면 영웅적 서사가 많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와 만화에는 정치적 메세징이 이미 강하게 내포되어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KKK를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 망하게 만든 것은 1946년의 슈퍼맨 만화였습니다. 슈퍼맨은 가장 미국적이고 가장 도덕적인 슈퍼히어로의 으뜸이고, 그가 대적하는 적은 무조건적인 악이며, 동시에 매우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세계 정복 계획을 가진 악당으로 그려졌습니다. 슈퍼맨이 KKK를 무찌르는 만화를 보고 아이들은 KKK를 조롱하는 놀이를 하기 시작했고, 실제 KKK의 멤버들 중 대다수가 그 후로 클랜을 탈퇴하게 됩니다. 여론 또한 KKK를 광대 집단이라고 여기기 시작하며 KKK는 몰락하게 됩니다. 이처럼 직선적인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슈퍼맨의 적이 절대악임과 동시에 어린아이와도 같아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한없이 나약하게 그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적은 악당이라는 강력하고도 명쾌한 메시지가 미국 시민들에게는 각인되어 있습니다. 동유럽, 중동 세계, 아시아, 심지어는 서유럽마저 미국에게 대적할 시 따끔하게 혼쭐내줘야 하는 하위 국가가 됩니다. 북유럽이나 아프리카는 위협이 될 가능성마저 없기에 존재하지 않는 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감하는 것에는 품이 듭니다. 제 1세계 시민으로서 동정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동정심이 강한 진보 진영의 운동가들은 공감 능력에 호소하며 내부의 자본을 잘게 나눠 행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호소해봤자 듣지 않는 보수 진영은 배불리 먹고 군사 무기를 개발하고 판매하고 전쟁을 지원합니다. 성공적으로 자본을 불리는 것이 도덕이기 때문에 도덕성이나 인간성에 호소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지 라코프가 쉽게 악으로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무관심을 드러낸다고 적은 것에 뼈저리게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럽고, 악하고, 이해할 수 없으며 비탄에 빠진 국가를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 적대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뻔뻔하게 무지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선민사상을 내세우며 제 3세계를 인도하는 구세주의 이야기를 따라가서도 안 됩니다. 물론, 그런 걱정도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을 보면 배부른 투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독후감은 제가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나열한 것이라 전통적인 독후감과 비교하면 내용이 매우 산만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독서 후의 감상이 맞으며, 앞으로 조지 라코프의 다른 책이나, 여러 번 언급된 블로그의 글들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