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조잡한 수필마냥 쓰는 글이라 두서는 없고 과하게 개인적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나의 부모님은 별거 혹은 이혼했다. 아빠는 군인이었는데(지금은 은퇴했다), 아빠에 대해 강하게 남은 기억 중 하나는 내가 중학생 때 첫 여자친구를 사귀고 얼마 되지 않아 만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난 양성애자일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했을 때 어, 그래? 나도! 하던 모습이다. 아주 어릴 때는 아빠가 귀가하면 무조건 레슬링을 하자고 달려들어서 킥복싱을 모방했다. 아빠는 너는 왜 다른 집 딸들처럼 이쁘게 아빠 오셨어요~ 하지 않느냐고 불평했고, 난 그냥 아빠를 걷어차는 데에나 집중했다. 아빠의 검고 발목이 긴 군화는 정말 커보였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생쯤 됐을 때에는 거의 같은 사이즈 신발을 신게 되었다.
우리는 매우 닮았는데, 얼굴도 성격도 그렇고 음악을 좋아하는 면도, 그림 그리는 것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몇 년 전까지는 아빠가 책을 읽고 권당 몇 줄씩 글을 써서 노트를 18권을 채웠다. 나에게 물려줄 테니 그 많은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노트를 읽으면 다 알 것이라고 했다. 정말 나에게 그걸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가깝고 싶은 만큼 멀어졌기 때문이다.
불이 나간 어둑한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다가 아빠 얼굴을 보고 기억을 더듬어봤으나 아빠가 무슨 크림과 면도기를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보고 고개를 젓지는 않을지. 내 쪽에서 신뢰하는 사이는 아니다. 내가 아빠를 크게 필요로 했을 때 아빠는 나를 돌려보냈다. 이해하지만 울었었다. 오히려 이해해서 서러웠다. 나와 아빠는 성격이 정말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마음이었을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머리가 다 크고 나자 아빠가 굉장한 사람은 아니었다. 비논리적인 얘기를 하거나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하소연이 듣기 싫다기보단... 내 주변인은 전부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나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지친다고 생각한 것에 더 가깝다. 어쨌건간에 신뢰와 의지를 기반으로 하는 관계는 아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잊고 있었는데, 내가 아빠의 클론 격이고, 내가 젠더적 난항을 겪으면서 떠오른 일이 있다. 엄마와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아빠는 엄마의 원피스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가족 세 명이 모두 세트로 맞춰 산 옷이었는데, 동일한 푸른색 꽃무늬 패턴으로, 아빠는 바지, 엄마와 나는 원피스였다. 아빠는 예쁘지? 라고 했고 엄마는 뭘 하는 거냐며 짜증을 냈다. 그러자 아빠는 웃기지? 라고 했고 나는 어울려! 라고 말했다.
통화하기 두렵다.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진 거리와 함께 보내지 못한 어린 시절이 어깨를 턱 누르고 앉아있다. 전화를 끊기 전에 꼭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사랑한다고 여러 번씩 얘기했고 아빠는 느끼한 목소리로 장난을 치곤 했는데 이제는 형식적이기마저 하다. 다만 이게 정말로 내 탓도 아빠의 탓도 아니다. 제 3자가 있으나 그의 탓도 아니다. 누구도 완전히 100퍼센트의 과실을 지닌 건 아닌데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만나기 두렵다. 좌절스럽게 느끼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래도 달에 한 번씩은 연락을 했고, 부양도 받아서, 내가 아빠 없이 자랐다는 걸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싸운 적이 없다. 싸운 적 없이 그냥 늘 멀찍했다. 반항도 안 해봤고 밉다는 말도 해본 적 없고 이해해달라고 호소해본 적도 없다. 나를 두고 떠나버린다.
전화통화를 하면 늘 아빠는 요즘 몸은 어떻냐고 하고 나는 늘 뭐, 아프지, 라고 말한다. 엄마는 어떻냐고 하고 나는 또 늘 뭐, 아프지... 아빠는 뭐 해? 뭐, 일하지... 어엉.
가스나야. 아 왜 가스나라고 해! 그럼 머스마냐. 아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