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이 무제한인, 좋아하는 밥집에 갔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아주머니 한 분이 바로 나를 알아보고 반기듯 미소지어주셨다. 하굣길 버스에서부터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요즘 피부가 안 좋아서 물을 많이 마시기로 결정했고 수업시간에 커피까지 마셨다) 화장실에 갔는데 여자화장실에 계시던 다른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서 여기는 여자화장실이에요! 하셨다. 나도 놀라서 저 여자예요... 라고 했는데 목소리가 아무래도 낮다 보니 신빙성이 없었는지 예...?! 하며 나를 위아래로 보셨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우나마 최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막말로 기갈 넘치게 호호 저 여자예요~! 했고... 그러느니 그냥 아 죄송합니다 잘못 봤어요! 하고 남자화장실로 도망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굉장히 어색해졌기 때문에... 계산하면서 거듭 사과하셨는데 또다시 당황해서 괜찮아요! 저도 이해해요! 라고 했고 대체 뭘 이해했다는 건지... 물론 이해한 게 맞다. 놀란 마음도 이해하고 정말로 죄송하기도 하지만 내가 죄송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그 분께 짜증난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하는 마음은 일절 없다. 그냥 머쓱하고 약간의 아쉬움이 들 뿐. 알아봐주신 아주머니는 내가 고등어를 발라먹은 걸 보고 어찌 이리 잘 발라먹었냐며 너무 잘 발라먹는다고 신기해하셨다. 난 항상 엄마한테 생선을 못 발라먹고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잘 발라먹는 거였다. 알고 보니 할 수 있더라. 알고 보니 정상이었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 산? 인데 고등학생 때는 벌점이 쌓이면 여기로 강제 트레킹을 가야 했다. 공원은 공원이고 뒤에 산이 더 있는데 그 산을 올라야 했고 그 때는 내가 다리가 그나마 쓸만했어서 면제시켜주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같이 바위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앞으로 갈 길에 대해 탄식하곤 했다. 안전장치 하나 없었는데 낭떠러지같은 바위에 그냥 앉아있게 해줬다니 교감선생님들도 참 용감했던 듯하다.
오랜만에 갔더니 또 이상야릇한 향수가 들었다. 물론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나서도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항상 이 동네가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아예 경기도에 살던 어릴 적에도 이 동네에 오면 향수를 느꼈다. 나도 이해 안 간다. 그냥 마음에 들었겠거니 하는 거다.
생각보다 오르기 쉬웠는데 내려가는 게 고역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지팡이도 같이 떨려서 그냥 구르면 구르는 거다 하고 내려왔다. 아이와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고 길고양이(산고양이인건가...)에게 츄르를 주는 사람도 봤다.
앞으로 자주 산책해야겠다. 재활이 될 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드디어 좋아하는 동네에 살게 됐는데 이걸 코앞에 두고 귀찮다고 안 가는 건 비이성적이다. 손해다. 아깝다. 집세 아깝다고. 만끽해야 해... 난 매사 의무감으로 사는 것 같다. 하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산책길을 마치고 부들부들 떨며 내려오는데 웬 가게가 훤히 불을 켜고 있어서 봤더니 북슬북슬한 인형을 잔뜩 팔고 있었다. 그냥 구경하러 들어갔는데 이 녀석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게 아닌가... 블라디미르잖냐... 그래서 샀다. 이게 삼만오천원 했다. 물론 이해한다. 수제니까.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다. 비상금삼아 안주머니에 넣어둔 지폐를 꺼내 지불했다. 왜냐면 현금 결제를 하면 모자를 준대서... 모자... 하여튼 이걸 사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빵님께도 사람된 도리로 내 자작 캐릭터의 모에화 인형을 사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지시겠냐 묻고 다시 들어갔다. 사장님께서 약간 당황한 얼굴로 날 봤고 나는 손까지 내저으면서 하나 더 사러 왔어요,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요... 사진 찍어도 되나요? 하고 뭘 사드릴지 의논까지 그 앞에서 마쳤다. 강아지 인형이라니... 강아지 인형이라고... 마음이 꺾인다... 고슴도치가 있었더라면... 하여튼 사장님도 아시겠지, 이 인형들을 사가는 사람들의 95퍼센트는 씹덕이리라는 걸. I know what you are... 이겠지... 사장님도 오타쿠일지도 모르지... 왜냐, 인형의 바리에이션이 너무 많았다. 눈 색도 다르게 해놓고 동물도 엄청나게 다양한 편이었고, 그냥 귀여운 동물 인형이구나 의 영역과 이건, 씹덕을 위한 헌팅그라운드다, 라는 느낌이 있는데 몇 개는 무고한 인형이었고 메인 디피되어있는 것들은 씹덕용이었다. 오히려 그러니까 마음이 편했다. 그래, 나도... 나도 씹덕질을 하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