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있던 수제 담배 가게에 갔다. 학교에서는 주말마다 기숙사생을 귀가시켰는데 그러는 길에 번화가를 지나쳐갔고 그 길에 수제 담배, 2500원 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때는 흡연을 싫어했으므로 관심은 없었지만 간판이 워낙에 거대해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걸 오늘 갑자기 간 이유는... 씹덕 이유이기 때문에 길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씹덕 이유라고만 알아두면 될 것 같다.
타르 함량이 세 가지나 됐는데 마음같아서는 중간 것 혹은 아예 연한 것을 하고 싶었으나 씹덕 사유로 가장 독한 걸로 부탁드렸다. 수제 담배는 제조 후 판매가 불법이라(무슨 허가가 필요하다던데 개인 사업자한테는 잘 안 내주는듯?)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래봐야 잎을 갈고 튜빙 기계에서 굴러나오는 담배들의 끝을 붓으로 털어 마무리한 뒤 또 다른 마감 기계에 넣는 게 다였다. 사장님은 좀 느긋한 아저씨였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지나다니면서 보다가 이제 와봤다고, 그런데 어른이 된 지는 한참 됐다고 했더니 나이를 대강 알아맞히셨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아셨어요?! 했더니 우리 가게가 7년 됐으니까...... 하셔서 아...
무엇도 비밀로 할 필요가 없으면 좋을 텐데... 어떤 정보도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고 약점이 되지 않으며 그냥 모든 것을 나눠도 적당히 평가하고 적당히 받아들여주고 적당히 모른체 넘어가줄 수 있다면, 아무것도 상처나 해가 되지 않는다면, 줄다리기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을텐데! 내가 뭘 했는지에 대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들은 정말로 그냥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안전한 범주라고 생각되니까 하는 것인데, 그건 내 기준이고 남들은 자기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소통을 고해로 한다. 그런데 이야기하는 것도 폭행이 된다는 걸 왜 그렇게 늦게 알았을지 모르겠다.
완전히 백 퍼센트 나를 병신 취급하지 않고 절대로 나를 모욕하지 않고 남몰래 미워하지도 않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내가 뭘 했어야 했지?
물밀듯 굴러가는 언덕 위에는 유령의 집. 커튼 하나 없이 훤하지만 바닥의 합판을 뜯어보면 똬리 튼 뱀이 얼기설기...
반찬이 무제한인, 좋아하는 밥집에 갔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아주머니 한 분이 바로 나를 알아보고 반기듯 미소지어주셨다. 하굣길 버스에서부터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요즘 피부가 안 좋아서 물을 많이 마시기로 결정했고 수업시간에 커피까지 마셨다) 화장실에 갔는데 여자화장실에 계시던 다른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서 여기는 여자화장실이에요! 하셨다. 나도 놀라서 저 여자예요... 라고 했는데 목소리가 아무래도 낮다 보니 신빙성이 없었는지 예...?! 하며 나를 위아래로 보셨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우나마 최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막말로 기갈 넘치게 호호 저 여자예요~! 했고... 그러느니 그냥 아 죄송합니다 잘못 봤어요! 하고 남자화장실로 도망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굉장히 어색해졌기 때문에... 계산하면서 거듭 사과하셨는데 또다시 당황해서 괜찮아요! 저도 이해해요! 라고 했고 대체 뭘 이해했다는 건지... 물론 이해한 게 맞다. 놀란 마음도 이해하고 정말로 죄송하기도 하지만 내가 죄송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그 분께 짜증난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하는 마음은 일절 없다. 그냥 머쓱하고 약간의 아쉬움이 들 뿐. 알아봐주신 아주머니는 내가 고등어를 발라먹은 걸 보고 어찌 이리 잘 발라먹었냐며 너무 잘 발라먹는다고 신기해하셨다. 난 항상 엄마한테 생선을 못 발라먹고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잘 발라먹는 거였다. 알고 보니 할 수 있더라. 알고 보니 정상이었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 산? 인데 고등학생 때는 벌점이 쌓이면 여기로 강제 트레킹을 가야 했다. 공원은 공원이고 뒤에 산이 더 있는데 그 산을 올라야 했고 그 때는 내가 다리가 그나마 쓸만했어서 면제시켜주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같이 바위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앞으로 갈 길에 대해 탄식하곤 했다. 안전장치 하나 없었는데 낭떠러지같은 바위에 그냥 앉아있게 해줬다니 교감선생님들도 참 용감했던 듯하다.
오랜만에 갔더니 또 이상야릇한 향수가 들었다. 물론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나서도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항상 이 동네가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아예 경기도에 살던 어릴 적에도 이 동네에 오면 향수를 느꼈다. 나도 이해 안 간다. 그냥 마음에 들었겠거니 하는 거다.
생각보다 오르기 쉬웠는데 내려가는 게 고역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지팡이도 같이 떨려서 그냥 구르면 구르는 거다 하고 내려왔다. 아이와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고 길고양이(산고양이인건가...)에게 츄르를 주는 사람도 봤다.
앞으로 자주 산책해야겠다. 재활이 될 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드디어 좋아하는 동네에 살게 됐는데 이걸 코앞에 두고 귀찮다고 안 가는 건 비이성적이다. 손해다. 아깝다. 집세 아깝다고. 만끽해야 해... 난 매사 의무감으로 사는 것 같다. 하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산책길을 마치고 부들부들 떨며 내려오는데 웬 가게가 훤히 불을 켜고 있어서 봤더니 북슬북슬한 인형을 잔뜩 팔고 있었다. 그냥 구경하러 들어갔는데 이 녀석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게 아닌가... 블라디미르잖냐... 그래서 샀다. 이게 삼만오천원 했다. 물론 이해한다. 수제니까.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다. 비상금삼아 안주머니에 넣어둔 지폐를 꺼내 지불했다. 왜냐면 현금 결제를 하면 모자를 준대서... 모자... 하여튼 이걸 사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빵님께도 사람된 도리로 내 자작 캐릭터의 모에화 인형을 사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지시겠냐 묻고 다시 들어갔다. 사장님께서 약간 당황한 얼굴로 날 봤고 나는 손까지 내저으면서 하나 더 사러 왔어요,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요... 사진 찍어도 되나요? 하고 뭘 사드릴지 의논까지 그 앞에서 마쳤다. 강아지 인형이라니... 강아지 인형이라고... 마음이 꺾인다... 고슴도치가 있었더라면... 하여튼 사장님도 아시겠지, 이 인형들을 사가는 사람들의 95퍼센트는 씹덕이리라는 걸. I know what you are... 이겠지... 사장님도 오타쿠일지도 모르지... 왜냐, 인형의 바리에이션이 너무 많았다. 눈 색도 다르게 해놓고 동물도 엄청나게 다양한 편이었고, 그냥 귀여운 동물 인형이구나 의 영역과 이건, 씹덕을 위한 헌팅그라운드다, 라는 느낌이 있는데 몇 개는 무고한 인형이었고 메인 디피되어있는 것들은 씹덕용이었다. 오히려 그러니까 마음이 편했다. 그래, 나도... 나도 씹덕질을 하자고...
맥도날드에서 코울슬로를 먹다가 든 생각인데, 나는 코울슬로를 좋아하지만 진짜 현지인이 만등 코울슬로를 먹어본 적은 없다. 미국에서 미국 재료로 미국인이 김치를 담그면 맛이 미묘하듯이 한국에서 만든 코울슬로도 미묘하겠지? 그럼 내가 좋아해온 코울슬로는 거짓 코울슬로다... 발효식이란 다른 문화적 음식보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으니까...
무엇이든 바다를 건널 수 있는데도 코울슬로 하나 먹어볼 수 없다는 게 진정한 문화적 교류나 글로벌라이징이 멀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코울슬로 그깟 걸 열심히 현지에서 포장해서 수출해봐야 누가 찾겠는가? 그냥 반쪽이로나마 직접 만들어먹거나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값싼 코울슬로를 먹지. 돈이 안 되니까 우리는 코울슬로를 경험해볼 수 없다.
과제하느라 바빠 뒤지는 줄 알았다. 쓸 말이 없어서 발췌하겠다.
‘I’ll pick it up,’ I offered.
‘I’ve got it.’ Gatsby examined the parted string, muttered ‘Hum!’ in an interested way, and tossed the book on a chair.
‘That’s a great expression of yours, isn’t it?’ said Tom sharply.
‘What is?’
‘All this “old sport” business. Where’d you pick that up?’
‘Now see here, Tom,’ said Daisy, turning around from the mirror, ‘if you’re going to make personal remarks I won’t stay here a minute. Call up and order some ice for the mint julep.’
[김욱동 번역가]
“내가 주울게요.” 내가 나섰다.
“벌써 집은걸요.” 개츠비는 끊어진 줄을 들여다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흠!” 하고 말하고는 그것을 의자 위에 던졌다.
“그게 당신의 멋진 말씨로군요?” 톰이 쏘아붙였다.
“뭐 말입니까?”
“그 ‘형씨’ 어쩌고 하는 말씨 말이오. 도대체 그 말은 어디서 주워들었소?”
“이봐요, 톰.” 데이지가 거울에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당신이 계속 인신공격이나 하고 있겠다면 난 여기 단 일 분도 더 있지 않겠어요. 전화를 걸어 민트 줄렙에 넣을 얼음이나 주문해요.”
[언덕이]
“내가 주울게요.” 내가 나섰다.
“아니, 내가 줍지.” 개츠비는 끊어진 줄을 들여다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흠!” 하는 소리를 내더니 전화번호부를 의자 위에 던져두었다.
“그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군, 안 그러오?” 톰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무슨 말?”
“그 ‘친우여’ 하는 소리 말이오. 도대체 어디서 주워온 습관이오?”
“이봐요, 톰.” 데이지가 거울에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계속 인신공격이나 할 거라면 난 여기 단 일 분도 더 있지 않겠어요. 전화를 걸어 민트 줄렙에 넣을 얼음이나 주문해요.”
[대안번역 설명]
그게 당신의 멋진 말씨로군요? 는 뉘앙스와 맞지 않고 대사로써 어색하다고 판단했다. A great expression (of yours)은 굉장한 표현법 등을 뜻하지 않고 당신이 자주 쓰는 말, 좋아하는 어휘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Old sport에 대해 더 고민해보았는데, 옛말 같은 느낌과 더불어 유사한 표현인 good man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자주 쓰이지 않는데 개츠비가 고수하는 말버릇임을 강조하기 위해 ‘친구’ 보다 ‘친우여’ 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았다.
수업 동안에 'old sport'를 뭘로 번역해야 하는지가 자주 나왔는데 솔직히 수업 안 들어서 뭘로 하자고 결론이 났는지 모르겠고 그냥 알아서 친우여 를 고민해봤다.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교수님이 뭐라고 하실지는 난 모르겠다. 내 알 바 아니긔
처자야겠다
2024년 10월 28일 이사하였다...
어릴 적부터 살고 싶어한 동네였는데, 다녔던 고등학교도 요 근방이다. 늘 설명할 수 없는 향수를 느껴왔는데 학교에서는 여섯 시가 되면 멀리서 교회 종이 울리는 게 들려왔고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판잣집이 늘어서있었으며 길거리에서는 연극 배우들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번화가 중심지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에 살던 원룸만한 침실이 딸린 투룸으로 이사했는데도 전보다 세가 싸다! 원래 쓰던 침대는 가로 80센티의 소파베드였는데 전 세입자가 침대를 두고 가줘서 그 두 배는 되는, 가로로 누울 수도 있는 커다란 침대가 생겼다. 스프링이 탄탄하다. 침대! 무려 침대가...
큰 방에는 창문이 무려 세 개. 주방에도 창이 있고 옷장 방에도 아마 있을 것이다. 전신거울도 생겼고 냉장고도 큼직하다. 도마 둘 자리는 마땅찮지만 접었다 폈다 할 만한 스탠딩 테이블이라도 하나 두면 쓸만하지 않을까? 다시 요리를 해먹고 살 생각에 좀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과연 실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빛이 약하다. 아예 천장 전등 자체가 힘이 없어서 어둑어둑한데 장스탠드를 하나 사서 두면 좋겠다.
눈이 높아서 나쁜 점은 가구같은 건 디자인이 들어가면 비약적으로 가격이 올라서 마음에 든다 싶으면 기본 몇십만원이라는 거다. 뭣같이 생겼다 싶으면 2만원의 상냥한 가격이다. 치사한 것들같으니. 발매트나 러그를 두고 싶은데 그런 것들도 예쁘다 싶으면 가격이 훌쩍 뛴다.
음................
카페인데 집에 갈래... 집이 좋다 비록 덜 치워서 개판이고 바닥도 덜 닦아서 발 까매지지만
그리고 다음주부터는 밥을 해먹어야겠다. 좀만 뒤로 넘어가면 미쿡 식료품점이 있다고 수완이가 일러줬으니 가봐야겠다.
어릴 적 미군부대에서 공수해왔던 얼굴만하고 두꺼운 판때기 허쉬 초콜릿이 갑자기 그립다. 틴 캔에 든 거대한 돼지고기 햄도... 개밥같던 MRE도 그냥 혼자 데워먹기에 좋았는데... 물론 그 식료품점에 그딴 게 있을 리 없다. 루트비어는 있을 듯?
제일 만만한 건 찜같은 걸 하면 쉬우니 고기랑 야채를 사서 푹푹 끓여다가 쌀 사서 밥 한솥 짓고 아침저녁으로 퍼먹어야겠다! 간장 설탕 식초 등등 다 새로 사야 한다는 게 단점이구나.
아침에 집 앞에서 뭔가 전기톱 소리가 나더니만 나와보니 침엽수 가지가 집 앞에 잔뜩 쌓여있었다. 맞은편 빌라 단지에서 가지치기를 했나본데 그냥 침엽수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북슬북슬하고 예쁜 가지들이었다. 아깝구나... 잔뜩 쌓아두니 동면하는 곰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가 벗어두고 간 모피 털옷처럼 보이기도 한다.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땐 정말 꿈만 같았는데(가족과 정말 아주 묘한 사이) 이제 엄청 좋아하는 동네에 엄청 널찍한 집에 사니까 기분이 아주 좋아서 혼자서도 웃음이 난다. 건물이 낡아서 계단에서 묘목이 자라나오고 있지만서도 여기서 오래 살고 싶다.
들어가기 전에. 조잡한 수필마냥 쓰는 글이라 두서는 없고 과하게 개인적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나의 부모님은 별거 혹은 이혼했다. 아빠는 군인이었는데(지금은 은퇴했다), 아빠에 대해 강하게 남은 기억 중 하나는 내가 중학생 때 첫 여자친구를 사귀고 얼마 되지 않아 만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난 양성애자일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했을 때 어, 그래? 나도! 하던 모습이다. 아주 어릴 때는 아빠가 귀가하면 무조건 레슬링을 하자고 달려들어서 킥복싱을 모방했다. 아빠는 너는 왜 다른 집 딸들처럼 이쁘게 아빠 오셨어요~ 하지 않느냐고 불평했고, 난 그냥 아빠를 걷어차는 데에나 집중했다. 아빠의 검고 발목이 긴 군화는 정말 커보였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생쯤 됐을 때에는 거의 같은 사이즈 신발을 신게 되었다.
우리는 매우 닮았는데, 얼굴도 성격도 그렇고 음악을 좋아하는 면도, 그림 그리는 것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몇 년 전까지는 아빠가 책을 읽고 권당 몇 줄씩 글을 써서 노트를 18권을 채웠다. 나에게 물려줄 테니 그 많은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노트를 읽으면 다 알 것이라고 했다. 정말 나에게 그걸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가깝고 싶은 만큼 멀어졌기 때문이다.
불이 나간 어둑한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다가 아빠 얼굴을 보고 기억을 더듬어봤으나 아빠가 무슨 크림과 면도기를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보고 고개를 젓지는 않을지. 내 쪽에서 신뢰하는 사이는 아니다. 내가 아빠를 크게 필요로 했을 때 아빠는 나를 돌려보냈다. 이해하지만 울었었다. 오히려 이해해서 서러웠다. 나와 아빠는 성격이 정말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마음이었을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머리가 다 크고 나자 아빠가 굉장한 사람은 아니었다. 비논리적인 얘기를 하거나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하소연이 듣기 싫다기보단... 내 주변인은 전부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나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지친다고 생각한 것에 더 가깝다. 어쨌건간에 신뢰와 의지를 기반으로 하는 관계는 아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잊고 있었는데, 내가 아빠의 클론 격이고, 내가 젠더적 난항을 겪으면서 떠오른 일이 있다. 엄마와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아빠는 엄마의 원피스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가족 세 명이 모두 세트로 맞춰 산 옷이었는데, 동일한 푸른색 꽃무늬 패턴으로, 아빠는 바지, 엄마와 나는 원피스였다. 아빠는 예쁘지? 라고 했고 엄마는 뭘 하는 거냐며 짜증을 냈다. 그러자 아빠는 웃기지? 라고 했고 나는 어울려! 라고 말했다.
통화하기 두렵다.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진 거리와 함께 보내지 못한 어린 시절이 어깨를 턱 누르고 앉아있다. 전화를 끊기 전에 꼭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사랑한다고 여러 번씩 얘기했고 아빠는 느끼한 목소리로 장난을 치곤 했는데 이제는 형식적이기마저 하다. 다만 이게 정말로 내 탓도 아빠의 탓도 아니다. 제 3자가 있으나 그의 탓도 아니다. 누구도 완전히 100퍼센트의 과실을 지닌 건 아닌데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만나기 두렵다. 좌절스럽게 느끼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래도 달에 한 번씩은 연락을 했고, 부양도 받아서, 내가 아빠 없이 자랐다는 걸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싸운 적이 없다. 싸운 적 없이 그냥 늘 멀찍했다. 반항도 안 해봤고 밉다는 말도 해본 적 없고 이해해달라고 호소해본 적도 없다. 나를 두고 떠나버린다.
전화통화를 하면 늘 아빠는 요즘 몸은 어떻냐고 하고 나는 늘 뭐, 아프지, 라고 말한다. 엄마는 어떻냐고 하고 나는 또 늘 뭐, 아프지... 아빠는 뭐 해? 뭐, 일하지... 어엉.
가스나야. 아 왜 가스나라고 해! 그럼 머스마냐. 아니이.